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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하여 나는 다시 너의 처음으로 간다
08/31/2026 · 13 min
서른아홉의 진우는 노을 지는 고속도로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완전한 시간으로 기억한다. 그러나 얼마 뒤 아내 수아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. 그녀 없는 부엌에서 진우는 창밖의 나무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다. 시간이 멈춘 가짜 세계임을 깨달은 그는 그곳에서 뛰어내리고, 눈을 떴을 때 열다섯 살의 교실에 앉아 있다. 거울 속에는 소년의 얼굴과 서른아홉의 눈이 함께 있다. 진우는 파란 공책에 아는 미래를 모두 적는다. 시간표, 첫 고백의 라일락 골목길, 그리고 스무 해 뒤의 붉은 D-DAY. 하지만 극본대로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수아는 그가 알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. 늦가을 골목에서 그녀는 말한다. "너는 내 뒤에 있는 유령을 그리워하고 있어." 진우는 공책을 버린다. 빈손으로 선 그의 고백 앞에서, 잠 못 드는 밤 손가락을 세는 자신만의 버릇을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수아는 잠시 그를 의심하지만, 끝내 손을 내민다. "가자." 두 사람은 다시 부부가 되고 두 아이를 얻는다. 서랍 속에는 단 하나의 날짜만 남는다. 그해 그 계절이 도착한 밤, 진우는 식탁에서 아내의 미세한 어지럼증을 포착하고 망설임 없이 응급실 문 안으로 뛰어든다. 스무 해 전의 앎이 극초기의 병을 붙잡는다. 수술이 끝난 아침, 공책은 서랍에서 나와 아이들의 크레용 낙서로 채워진다. 날짜가 적히지 않은 내일이 시작되고, 창밖의 나무는 살아 있기에 흔들린다.